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뮌헨 협정 (문단 편집) === 뮌헨 협정 관련국들의 말로 === 뮌헨 협정에 관련된 국가들의 말로는 모두 좋지 않았다. * '''나치 독일''': 주데텐란트와 체코를 집어삼키고 슬로바키아를 [[괴뢰국]]으로 만든 뒤 세력 확장을 더 계속하고자 주데텐란트처럼 독일계 다수지 병합을 명분삼아 1939년 폴란드를 침공했으나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한 영국과 프랑스의 선전포고를 맞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폴란드와 프랑스를 점령하는 등 잘 나갔으나, 영국 침공에 실패했음에도 [[독소전쟁|소련을 침공하고]] 북아프리카에 지원군을 파병하는 등 국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전선을 확대, 그토록 피하려 했던 [[양면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이후 [[미국]]까지 참전하여 영국, 프랑스, 소련, 미국 등 4개국의 협공을 받으면서 전세가 더욱 더 불리해지다가 결국 1945년 패전하여 '''[[멸망]][* 독일은 베를린 선언(Berlin Declaration)에서 일단 존재하지 않는 것(not exist)으로 간주되었다. 일본과 이탈리아를 포함한 추축국 진영 전체를 통들어 멸망 처분을 받은 건 독일이 유일하다.]''', 2차대전으로 얻은 점령지 전체, 뮌헨 협정으로 뺏어먹었던 주데텐란트, 기존 영토인 동프로이센, 포메른, 슐레지엔을 상실하고 그나마 남은 영토도 [[동독]]과 [[서독]]으로 나라 자체가 분단되었다. 게다가 막대한 전쟁배상금도 물었고[* 은근히 간과되는 부분인데 포츠담 회담으로 확정된 독일의 배상금은 230억 달러에 달했다. 물론 독일이 알거지가 되었으니 현금으로 뜯어내긴 힘들고 산업시설같은 현물로 대부분 뜯었다.] 동유럽에서 독일이 저지른 범죄가 워낙 잔혹했으므로 전후 동유럽의 독일인들은 현지 주민과 정부의 보복을 빠꾸없이 그대로 받아야 했으며[* 예를 들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암살당한 '유인원 작전' 직후 나치 독일은 그 보복으로 그가 암살당한 체코의 '리디체' 마을을 불도저로 밀어 버린 것은 물론 성인 남자는 '''모두 죽이고''' 나머지는 '''전원''' 강제수용소로 끌고 갔다. 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정부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 주데텐란트는 돌려받아도 독일계 주민은 놔두려고 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체코슬로바키아 내의 독일계 주민들을 전부 독일로 추방하는 강경책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독일은 이런 보복을 피해 대거 피난하거나 전후 추방된 최소 1,000만 명의 독일인 난민들도 그대로 떠안아야 했다. 비록 [[냉전]]으로 서방과 소련 양측에서 지원을 받게 된 덕택에 경제력은 오히려 나치 시절보다 더 올라갔고 보태서 분단도 [[독일 재통일|재통일]]로 해결되었지만 그 대가로 기존에 폴란드에 넘어간 구 영토에 대한 영유권은 영구히 포기하게 되었다. * '''주데텐란트 독일인''': 국가는 아니지만 독일에 병합된 후 열광적으로 히틀러를 지지했으므로 전후 체코인들의 분노에 찬 보복을 받았다. 상당수가 매국노로 간주되어 체코인들에게 린치 내지 학살을 당했고[* 다른 구 독일령 지역에 살던 독일인들도 사정은 결코 다르지 않았다. 소련, 폴란드 측의 방침으로 이들도 대부분 예로부터 살던 터전을 버리고 독일 본국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이후 추방령이 내려져 결국 대부분이 무일푼으로 독일로 떠나야만 했다.[* 참고로 이들의 존재와 관련하여 독일과 체코의 입장이 많이 다른데 독일 정부는 체코 영토로 인정하면서도 독일인 실향민들이 고향으로 가거나 이전 재산 소유권에 관한 소송을 거는 것 자체는 막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체코 측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2015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7608643|주데텐란트 지방에 속해있던 체코의 한 시의회에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인에 대한 강제 추방에 대해 사과하였다]].] * '''영국''': 폴란드와 군사 동맹을 맺으며 뒤늦게 독일 타도를 외쳤으나 정작 [[폴란드 침공|폴란드가 침공당할 땐]] [[가짜 전쟁|도와주지 못했다.]] 그리고 체임벌린은 1940년 5월에 [[노르웨이 침공|노르웨이 전역]]의 패전을 계기로 실각했다. 그나마 국가가 존속한 상태로 독일과 맞서 싸웠고 본토가 전쟁에 크게 휘말리지도 않았으며, 결국 전쟁에서 이겼으니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경우다. 그러나 전비 소모와 경제적 침체로 인해 전후 대공황급 경제 위기를 다시 맞았고, 미국의 지원으로 겨우 극복할 수 있었다. 물론 [[대영제국]]은 영국의 역량 부족으로 해체수순을 밟게 되었는데 그래도 식민지 지배의 무의미함을 일찌감치 자각하고 협상을 통해 독립시킨 덕택에 별 유혈사태 없이 식민국가들과도 영연방 같은 식으로 어느 정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가장 사정이 나은 경우다. 그러나 그렇게 배제하고 싶었던 소련이 저 협정의 나비효과로 세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초강대국이 되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거 하나 때문에 체임벌린을 혐오하는 영국인이 많다. * '''프랑스 제3공화국''': 국가 대 국가로는 독일을 이길 수 없었으나 그래도 충분히 버티기 전술을 시도할 수 있었고 그 사이 폴란드와 영국이 참전하게 되면 독일도 다른 지역 유지하느라 지쳐서 포기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정작 실전에 돌입하자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의 협공에 허망하게 패망하고 프랑스는 1차대전식의 낡아빠진 군사 전략과 삽질을 반복하며 독일과의 전쟁에서 [[프랑스 침공|단 6주만에 패배하여 점령당했다.]] 수도 [[파리(프랑스)|파리]]를 포함한 영토 북쪽 지역은 독일군에게 강제로 병합됐고 남쪽 지역 및 식민지에는 1차 대전의 영웅이었던 페탱을 수반으로 하는 [[비시 프랑스|친독 정부]]가 들어섰다. 뮌헨 회담에 참석했던 달라디에 총리는 정치범으로서 수용소에 끌려갔으며 프랑스 국민들은 전쟁에서 패한 죄로 독일에 인적·물적 자원을 엄청나게 바쳐야 했고 그 결과 지독한 물자난과 굶주림에 허덕여야 했다. 특히 비시 프랑스를 독일이 점령한 뒤에는 그나마 형식적인 절차도 없이 대놓고 빼앗아갔으며 프랑스 국민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유대인들 중 4분의 1이 나치 말살수용소로 끌려가 학살당했다. 다행히 미국의 참전과 히틀러의 삽질 등으로 독일이 전쟁에서 패한 덕택에 주권을 되찾았고 [[샤를 드골]]을 비롯한 [[자유 프랑스]]군의 분투와 기민한 움직임으로 주요 승전국 지위를 취하고 빠르게 복구하여 강대국의 대열에 들어서긴 했지만 이후에도 이 당시의 패전에 따른 불명예는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큰 상처로 남았다. 나치에게 프랑스가 단시간에 패배한 사실은 식민지인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이는 식민지 전쟁으로 이어졌고 베트남과 알제리에서 패배하면서 식민지를 상실했다. * '''폴란드 제2공화국''': 폴란드는 뮌헨 협정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에 별도로 압력을 가해 폴란드계가 다수인 테셴 서부를 병합했고 슬로바키아 국경지대의 야보리나, 토르스테냐를 병합했지만 1년 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에 점령되었다. 독일의 패전으로 주권은 되찾았지만 동부전선의 주요 전장으로 독일과 소련에게 여러 차례 정복과 점령, 분할, 심각한 인구손실을 겪었다. 종전 후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가 [[냉전]] 시기 소련의 [[위성국]]으로 40여 년을 지내게 되었지만 1989년 [[동유럽 혁명]] 과정에서 공산당 1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되었다. 2009년 뮌헨 협정으로 테셴 서부를 점령한 일에 대해 폴란드 정부는 체코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 '''헝가리 왕국''': 역시 뮌헨 협정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헝가리계가 다수인 슬로바키아 남부와 우크라이나계 다수의 자카르파티아를 병합했다. 2차 대전에서는 [[추축국|독일의 동맹국]]으로 전쟁에 참전하고 1940년 2차 빈 중재와 1941년 [[유고슬라비아 침공]]으로 옛 영토를 상당수 회복했다. 그러나 [[독소전쟁]]에 참전했다가 신나게 털리고 [[소련군]]에게 영토가 초토화되었다. 이후 남부 슬로바키아와 루테니아를 포함해 2차대전 당시 얻었던 영토들을 모두 잃었고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다가 1989년 동유럽 혁명 과정에서 공산당 1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되었다. * '''이탈리아 왕국''': 회담의 협상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사실상 독일을 편들어 독일의 주데텐란트 병합을 눈감아주고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과 함께 추축국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전했으나 오히려 가장 먼저 항복하면서 패전국이 되었고 독일과 추축국의 편에 서서 전쟁을 일으켰던 독재자 무솔리니는 실각 후 반정부군 세력에게 붙잡혀 총살당했으며 무솔리니의 내각 장악과 전쟁 참전을 승인했던 [[사보이아 가문|이탈리아 왕실]]은 전후 국외로 축출되어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되었다.[* 실제 이탈리아 구 왕가의 귀국은 2002년에야 이뤄졌다.] *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전쟁 기간 내내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제력과 산업 기반을 재무장과 군사력 유지를 위해 아주 쏠쏠하게 써먹었다. 물론 이는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에게는 독일의 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 강제노동을 하라는 의미였다. 그나마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은 이렇게 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었으나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의 대상이 되어 폴란드에 세워진 절멸수용소로 끌려가 가스실에서 학살당해야 했다.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덕택에 주권을 되찾긴 했으나 독일군이 물러나기가 무섭게 뒤이어 소련군이 자국 영토로 들어와 루테니아를 빼앗기고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는데 냉전 체제가 무너지면서 민족, 국가 간의 분쟁이 불거지다가 아예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각자 분리 독립해 버렸다. 둘 다 원해서 분리 독립했기 때문에 지금도 서로 감정이 좋은 편이다. 한편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정권에서는 한동안 슬로바키아 고유의 상징인 쌍십자를 나치 시절 괴뢰정권이 연상된다고 하여 금지시키고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Coat_of_arms_of_Slovakia_%281960-1990%29.svg|불꽃 모양]][* 이 불꽃 모양은 1944년 [[http://en.wikipedia.org/wiki/Slovak_National_Uprising|나치 괴뢰정권에 반발해 일어난 봉기]]를 상징한다고 한다.]으로 한동안 대체했다가 민주화 이후에야 쌍십자 상징이 부활했다.[* 물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종교적 상징물을 부정하는]] 공산 정권 눈에 [[십자가]]가 아니꼽게 보인 탓도 있었다.] * '''스페인 제2공화국''': 회담의 주된 주제도 아니고 중부 유럽의 문제에 실려 논의된 수준에 불과했지만 1937년 5월 이후 정치적, 군사적 전선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대한 반파시스트 국제 여론을 통한 외교적 승리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공화파의 희망을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은 히틀러가 무슨 짓을 해도 막을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메세지를 통해 완전히 박살냈고 소련의 대 공화파 지원이나 프랑스의 비정기적이고 간접적인 지원도 끊어 버렸다. 뮌헨 협정의 회담을 보고 전쟁이 가망이 없다는 판단을 한 공화파 지도부는 곧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국제 여단 의용병들을 해산하고 각각의 조국으로 보냄으로써 실질적인 패전이 확실시되었다. 몇 달 후인 1939년 봄 [[마드리드]]가 함락당하고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스페인 공화국의 시체 위에 파시스트 국가를 건설하였지만 내부 재건을 명분삼아 히틀러의 전쟁 참전 요청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덕분에 전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고 30년이 넘게 지난 1975년까지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뮌헨 협정에서 교훈을 얻은 국가도 있었다. * '''미국''': 미국은 협상의 해당국은 아니었으나 뮌헨 협정을 비롯한 이 시기 미국의 대유럽 경제/군사/외교 정책이 [[제2차 세계 대전]]의 참상을 겪은 후 반성의 대상이 되었다. 때문에 미국은 [[국제연합]]의 창설 멤버이자 강력한 권력을 가진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국제연합에 가입했으며 각지에 미군을 직접 주둔시키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를 창설해 서유럽과 북유럽 각국의 안보를 공동 책임의 형식으로 미국이 직접 강력하게 보장해 주기 시작했고 브레튼-우즈 체제의 형성을 통해 막강한 해군과 공군을 동원해 유럽과 미국 사이의 대서양 항로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며 동시에 자유무역 체제의 중심이 되어 유럽 각국의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과 이외 국가들 간의 자유로운 무역과 교류를 옹호하고 보장해 주겠다고 선언하였다. 즉, 다시는 나치 독일과 같은 존재가 유럽에서 등장해 평화를 위협하지 않도록 사회/경제/군사/문화/정치적 안전과 자유를 미국이 직접 보장해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한편 소련의 바람 및 요청과 달리 냉전 초반에 독재 국가인 소련과의 비타협 노선을 선택해 [[마셜 플랜]] 등을 실시해 서유럽의 경제적 부흥과 재무장을 이끌었다.[* 다만 동시에 미국은 소련(냉전 종식 이후에는 러시아)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보장 범위를 적당히 조정했다. 냉전 시절에는 서독, 노르웨이, 그리스, 이탈리아 등 [[NATO]] 가입국들과 자유 진영에 속해 있으면서 중요도가 높은 국가들만 보호했으며 [[탈냉전]] 이후에는 폴란드, 체코와 슬로바키아, 핀란드, 발트 3국 등 소련의 위성국에서 벗어난 국가들을 추가하여 보호 범위에 집어넣었고 그 외의 국가는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러시아가 일으킨 [[돈바스 전쟁]]과 북한이 일으킨 6.25 전쟁도 미국이 당시 우크라이나와 남한([[애치슨 라인]] 밖)을 보호 대상에서 공식적으로는 제외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는 이가 많다.] 덤으로 '''회원국이 [[나치 독일|비회원국]]이 무섭다고 [[체코슬로바키아|회원국]]을 팔아먹는데도''' 침묵한 [[국제연맹]]도 망했다. 물론 국제연맹은 이전부터 지침을 [[이탈리아 왕국|대놓고]] [[일본 제국|무시하는]] 국가들 때문에 [[식물인간|식물연맹]]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어느 정도의 기능이나마 회복한 건 [[국제연합]](UN)으로 재창설된 이후다. 이전과 달리 [[안보리]] [[상임이사국]] 제도 등을 도입해 더욱 강력해졌고 상임이사국들도 어느 정도 UN의 눈치를 봐야할 정도로 실효적 효력을 지니기도 했으나 [[냉전]]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국제연합의 위세는 크게 압도적이지 못했고 지금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체코]] 및 [[슬로바키아]]에서는 한국인들이 [[을사조약]]을 을사늑약으로 부르듯 이 조약을 '''뮌헨의 배신(Mnichovská zrada)''' 혹은 '''뮌헨의 강요(Mnichovský diktát)'''라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뮌헨'''늑약'''쯤 되는 표현이다.] 한편 처칠이 뮌헨 협정을 반대하고 결국 전쟁을 이끌어 체코슬로바키아를 해방시켜 준 은인이기 때문에 체코 및 슬로바키아에서는 처칠만큼은 매우 높이 평가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